'이상 소설 전집'으로 살펴본 '이상(李箱)'의 작품세계 (中)

- '지주회시(鼅鼄會豕)' 로 살펴본 '이상'
'지주(鼅鼄)' 라는 말은 한문투의 '거미'라는 뜻이다. 보통은 '벌레 훼'(虫) 자 변으로 많이 쓰는데, 실제로 일본어로 '쿠모'(くも) 라고 읽기도 한다. 즉 지주회시(鼅鼄會豕)는 '거미가 산돼지를 만나다.' 라는 의미이다. 1936년 <중앙(中央)>에 실린 작품으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등의 서술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읽는데 꽤나 애먹었다. )
<줄거리>는 여급 아내가 '뚱보'의 발에 채여 계단으로 굴러 떨어진 사건으로 시작되고 귀결된다. 뚱보는 그녀의 손님이었는데, 뚱보의 귓전에다 '양돼지'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한편 오(吳)는 가부꾼(돈놀이 꾼)이다. 이상과 친분이 있다. 뚱보는 오(吳)의 손님인데, 흥청망청 돈을 쓰곤 한다. 후에 오(吳)가 아내에게 십원 지폐 두 장을 준다, 아내는 그 돈을 보고 해죽거린다. 이 아이러니를 발견한 이상은 모두가 빌붙어 사는 거미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아내더러 차라리 '다시 걷어차이지 그러냐' 고 생각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상은 처음에는 아내를 빌붙는 거미에 빗대더니, 그 비유는 자신에게까지 이어진다. 즉 결국 '모두가 빌붙어사는 거미'라는 게 이 이야기의 주제인 셈이다.
오냐 왜그러니 나는거미다. (중략)
(이상 소설 전집 P63)
거미 - 분명히그자신이거미였다. 물부리처럼야위어들어가는아내를빨아먹는거미가 너 자신인것을 깨달아라.
내가거미다. 비린내나는입이다.
(이상 소설 전집 P65)
- '날개'로 살펴본 '이상'
'이상'하면 떠올리는 작품은 무엇인가. 단연코 열에 열은 '날개'를 떠올릴 것이다. 날개는 <조광(朝光>(1936년 9월호) 에 실린 작품이다.
<줄거리>는 주인공과 몸을 파는 아내가, 같은 골방을 칸막이로 나눈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가끔 외출을 한다. 외출을 했다 돌아오면 아내와 손님이 정을 나누는 장면을 목도하곤 했다. 비가 오던 어느날 주인공은 외출을 했다 감기에 걸리는 데, 아내는 아스피린이라며 아달린(수면제)를 줘서 주인공을 재운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주인공이 아달린을 몽땅 털어먹고 일주일 후에 깨어난다. 후에 방황하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날개가 돋는 기분을 느끼며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마지막 날개가 돋는 환상에 젖는 주인공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 소설 전집 P 116)
<1. 주인공이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2. 골방에서 썩어가다 '아내'로부터 벗어나게 된 주인공>을 의미한다고도 했다. 소설 '날개'는 이상이 집필당시 금홍과의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걸 생각해 보았을 때 필자는 개인적으로 귀결적으로는 자살하는 것이 더 서술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얻지만, 정황 상으로는 후자의 의견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금홍과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上) 편을 참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기생 금홍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장면도 드러나는데 바로 115페이지의 중간부분이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그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 '봉별기(逢別記)'로 살펴본 '이상'

'날개' 가 1936년 9월에 쓰였다면, 본격적으로 기생 금홍과의 이별이 진행되면서 쓰인 작품이 바로 이 '봉별기'다. 같은 해 12월 <여성(女性)>에 실린 이 작품은 '만남과 헤어짐을 기록함'이라는 의미이다. 이상이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동경으로 떠나기 직전의 글인 셈이다. 금홍과의 총 3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금홍과 이상이 만나는 첫 장면부터 시작한다. 금홍은 몸을 파는 기생이나 자신의 일을 이상에게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다. 이상과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녀는 이상에게 받은 돈을 자랑하는 등 스스럼없는 행동을 보이나, 이상의 부인이 되고 나서는 그 행동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생생활에 향수를 느끼게 되는데, 그를 떠나고 나서 후에 그를 다시 찾고 서로 이별하기로 마음 먹는다. 금홍이 밑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云云)"
(이상 소설 전집 P 127)
- '동해(童骸)'로 살펴본 '이상'
제목에서부터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아이유골'이라는 뜻인데, 이 소설 가운데서는 아이가 등장조차 하지 않고, 유골은 더더욱 서술되어 있지만은 않았다. 알고보니 이상의 수필 <행복(幸福)>의 한 대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 대목은 "아니야 나는 지금 나만을 사랑할 동정(童貞)을 찾고 있지! 한 남자 혹은 두 남자를 사랑한 일이 있는 여자를 나는 사랑할 수 없어. 왜? 그럼 나보고 먹다남은 형해(形骸)에 만족하란 말이람? " 이라는 말의 동정과 형해를 합한 말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또한 이상이 동경에서 쓴 마지막 소설로도 유명하다. 이후 이상은 불순사상 혐의로 체포되고 폐결핵이 악화되어서 죽음을 맞는다.
<줄거리>는 임(姙)이 '나'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말로는 윤(尹)을 버리고 왔다고 하지만 실은 남자를 꿰차는 임에 이상은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를 추억하는 나쓰미캉(여름 귤)을 깎으면서 끝을 맺는다. 총 구성은 1. 촉각 2. 패배시작 3. 걸인반대 4.명시(明示) 5. TEXT 6.전질(顚跌) 로 되어 있다. (이상 소설 중 드물게 단락이 나눠져 있다!)
개인적으로 "당신은 무수한 매춘부에게 당신의 그 당신 말마따마 고귀한 육체를 염가로 구경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지요." 라는 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下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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