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전집'으로 살펴본 '이상(李箱)'의 작품세계 (下)
- '종생기(終生記)'로 살펴본 이상의 작품세계
'종생기(終生記)'는 '삶을 끝내는 것에 관한 기록'이라는 뜻의 제목이다.
시작 첫머리부터 이상은 당나라 시인 최국보 '소년행(少年行)'의 첫 문장 '유극산호편(遺䧍珊瑚鞭)'을 인용한다.
극유산호(䧍遺珊瑚) - 요 다섯 자 동안에 나는 두 자 이상의 오자를 범했는가 싶다.
(이상 소설 전집 P160)
최국보의 시인 소년행의 전문은 이렇다.
遺䧍珊瑚鞭 = 산호 채찍을 잃고 나니
白馬驕不行 = 백마가 교만해져 가지 않는다.
章臺折楊柳 = '장대(지명)'에서 버들 가지를 꺾으니(여인을 희롱하니)
春日路傍情 = 봄날 길가의 정경이여
귀한 산호채찍을 버려가며 버드나무 가지로 대신 쓴다는 내용과 더불어 여인과 놀러가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상은 첫문장에서 '채찍 편' 자를 벌써부터 잊어버렸음에도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 채찍일랑 꽉 쥐고 죽으리라.
내 폐포파립 우에 퇴색한 망해 우에 봉황이 와 앉으리라.
(이상 소설 전집 P161)
<줄거리>는 삶을 끊으려 유서를 작성하는 이상에게 정희(貞姬)의 연애 편지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내용은 즉슨 이상을 만나뵙고 싶다는 정희의 절절한 애정을 담고 '최후까지 더럽혀지지 않은 것'을 이상에게 주겠다며 유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말은 거짓이었다. 이상은 정희가 S에게도 똑같이 연애편지를 보냈었던 걸 알고는 실망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요절이 아니라 노사(老死)라고 일컬으며 끝을 맺는다.
비천한 뉘 집 딸이 해빙기의 시냇가에 서서 입술이 낙화 지듯 좀 파래지면서 박빙 밑으로는
무엇이 저리도 움직이는가?
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이 숙이고 있는데 봄 방향(芳香)을 품은 훈풍이 불어와서 스커트,
아니 너무나 슬퍼보이는 아니 좀 슬퍼 보이는 홍발(紅髮)을 건드리면.
( 이상 소설 전집 P178 - 인용 시와 부합하는 구절)
- '환시기(幻視記)' 로 살펴본 이상의 작품 세계
'환시기'는 '환영을 본 것을 기록함' 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환영이란 '순영의 얼굴이 왼편으로 비뚤어져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줄거리>는 이상의 아내가 그를 떠났을 무렵, 순영에게 반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송(宋)군과 순영이 눈이 맞고 결국에는 송군의 자살소동으로 송군과 순영이 맺어지게 된다. 송군은 후에서 아내의 얼굴이 왼편으로 삐뚤어 보인다고 상에게 고백을 한다. 그러면서 이상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전개된다. 자신도 똑같이 순영의 얼굴이 삐뚤어 보였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그에게 '바른쪽으로 한번 비켜서 보게나'라며 빈정대면서 끝을 맞는다.
아까 바른쪽으로 비켜서라는 소리는 괜헌 소리구 비켜서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정 -
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죄다 바른 쪽으로 삐뚤어져 보이드래두 사랑하는 아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직능은 그만 아닌가
(이상 소설 전집 P 201)
이 환시기에서 나타난 특징은 '순영과 송 그리고 이상'의 심적 거리를 실제거리로 나타내었다는 점 같았다.
순영은 회령 사람이고 이상과 송군은 삼천포사람이다. 즉 반도의 남북 끝자락에서 만난 것이다.
그러면서 이상은 처음 순영을 마주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해 놓는다.
순영의 마음은 남북 이천오백 리와 같이 차디찬 거리 저편의 것이었다.
그 차디찬 거리 이편에는 늘 나와 나처럼 고독한 송 군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상 소설 전집 P195)
그리고 송 군의 자살 소동으로 송 군과 순영이 맺어지는 계기가 되자 그는 문득 동경으로 떠나버리고 싶어진다 .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송 군에게 순영이 정말로 회령사람이냐고 묻자, 요즘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났다며 당혹감을 드러낸다. 이는 송 군과 순영이 점점 심적으로 멀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데, 여기서 이상은 이렇게 말한다.
(중략) 아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직능은 그만 아닌가.
- 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토크 동경 사이 남북 만 리 거리두 베제처럼 바싹 맞다 가서구 말테니.
(이상 소설 전집 P201)
- '실화(失花)' 로 살펴본 이상의 문학세계
실화는 말 그대로 '꽃을 잃다'는 의미이다. 이 꽃은 이상이 강사로 나가는 교실의 학생인 C양이 준 물건으로 이상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의미한다. 그는 비밀에 관한 격언으로 소설의 막을 여는데 대략 이런 식이다.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이상 소설 전집 P202)
그리고 이 문장은 P208에도 반복되며 끝에 가서는 '비밀이 없어진 이상'을 자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줄거리>는 이상이 흠모하는 연(姸)이 이상과 Y, S 세 남자를 꿰차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C 양은 이상에게 희생적인 사랑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이상에게 꽃을 선물하며 방을 꾸미라고 하지만, 이상은 그것을 잃어버리곤 자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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