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전집'으로 살펴본 '이상(李箱)'의 작품세계
- 시작하기 앞서
우선 상(上), 중(中) 하(下) 편으로 나뉘여져 있는 만큼, 다루는 내용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번 상 편에서는 '이상(李箱)'이라는 인물의 개요와 총 3편의 작품(지도의 암실/ 휴업과 사정/ 지팡이 역사/ )을 조망할 예정이다. 나머지 10편의 작품(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동해/ 종생기/ 환시기/ 실화/ 단발/ 김유정/ 십이월 십이 일)은 중, 하 편에서 다루려 한다.
- 이름만큼이나 괴이한 '이상'
1910년도 생이다.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상이라는 이름의 뜻은 상자라는 뜻인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베 코보(安倍公房)'의 소설 '상자인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듯 하다.) 1930년에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 일'을 발표한다. (하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상은 몸이 약했다. 당시 고등교육을 받을만큼 지식인이었던 그는 1933년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그만두고 '제비'라는 다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요양차 들렀던 온천에서 '금홍'이라는 기생을 알게되고 그녀를 다방 마담의 자리에 앉힌다. 이 당시 소설 '날개'를 집필하는데, '금홍'과의 동거경험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다방이 폐업한 후에는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소설가 '김유정'과 친하게 지내는데, 소설 '김유정'에는 그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난다.
이상은 1936년부터 알고 지내던 당대의 여성 수필가이자 미술평론가이자 서양화가인 '변동림(1916~2004)'과 결혼을 하게 된다. (날개에서 보여졌듯, 기생의 필연적인 운명에 대해서 개탄한 모양이다.) 변동림은 이상 사후에 그 유명한 한국에서 손꼽히는 화가인 '김환기'와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던 것 같다.
이상은 새 출발을 위해 떠난 도쿄(東京)에서 큰 실망을 하고, 조선으로 귀국하려고 했으나, 폐결핵이 악화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기까지 한다. 그의 작품 '종생기(終生記)'에서는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듯 보인다. 조사를 받던 중 폐결핵 탓에 28세로 생을 마감한다.
-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이상'하면 고등교육의 영향으로 그의 소설 '날개'를 처연히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의 파격적인 구성의 시(詩)인 '오감도(烏瞰圖)'에 관한 에피소드를 생각하곤 한다. 다방 '제비'가 폐업하고 난 뒤인 1934년 당시 문인들(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조선중앙일보'에 발표된 이 시는 신문사로 하여금 많은 항의 전화를 빗발치게 만들었다. 결국 '연작 시'인 오감도는 도중에 연재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너무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오감도(烏瞰圖)'는 '까마귀가 내려다보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현대어로 번역하자면 이렇다. 현대 난해 시의 최고봉으로 아직까지도 해석에 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아해'는 아이의 옛말이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 '지도(地圖)의 암실'
1932년 3월 <조선(朝鮮)>에 '비구(比久)'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소설이다. 이상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 수필인지 소설인지 가늠이 가질 않는다. 평범하게 '뒷간→ 전구(앙뿌을루)에 비닐봉투를 씌움 →극장 (무덤에 빗댐)' 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도는 '뒷간의 변'을, 그리고 암실은 '극장'을 의미하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한문과 중국어, 불어를 겸용하여 쓰기도 했고, 육중의미로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 굉장히 특이했다.
'離三茅閣路到北停車場 坐黃布車去'
(P 7 = 새벽 잠자리에 들기전에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모습을 한문으로 썼다.)
尔上那兒去 而且 做甚麽
(P 11 = '당신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라는 의미의 중국어
JARDIN ZOOLOGIQUE
CETTE DAME EST-ELLE LA FEMME DE MONSIEUR LICHAN?
앵무새 당신은 이렇게 지껄이면 좋을 것을 그 때에 나는
OUI!
(P14 = '동물원' '이 부인이 이상 씨의 아내입니까?' '네!' 의미의 불어)
육중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은 '트렁크'인데 "그는 트렁크와 같은 낙타를 좋아하였다.(P15)"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트렁크는 <1. 자동차의 집실이 칸 혹은 여행용 큰 가방> <2. 나무줄기 > <3. 철로의 간선> <4. 건물의 기중줄기> <5. 전화의 중계선> <6. 장거리 전화> 라는 의미가 있는데 모두 사용해도 문맥에 연결된다고 한다.
- '휴업과 사정(事情)'
여기서 이상은 '보산(甫山)' 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1932년 4월 <조선(朝鮮)>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음(陰)과 양(陽)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바로 낮에 주로 잠을 자고 밤에 시끄러이 하는 보산(이상)과 낮에 생활하는 SS(이웃집 사내)의 일화를 담고 있다. SS는 보산(이상)의 마당에다 침을 뱉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보산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SS의 아내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소설의 첫머리였다. 아마 휴업이라는 건 보산과 SS가 휴식을 취하는 낮과 밤의 상반된 이미지를 의미하며 사정이라는 건, 보산이 후에서야 자신이 밤에 시끄럽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삼 년 전이 보산과 SS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앉아 있었다. 보산에게 다른 갈 길 이쪽을 가르쳐 주었으며 SS에게 다른 갈 길 저쪽을 가르쳐 주었다.
(이상 소설 전집 P27)
필자는 3년 사이에 자연스레 멀어진 보산과 SS를 이렇게 묘사하는 게 참신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중국의 천지개벽 신화같지 않은가. 이에 보산은 음(陰)을 자처하고 밤에서 생활하며, SS는 양(陽)을 자처하고 낮에 생활하니 두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음을 자처한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SS도 저렇게 밤을 낮으로 삼아서 지내는가. 그러면 SS도 음양의 좋은 이치를 터득하였단 말인가.
(이상 소설 전집 P37)
'논어(論語) 이인편(里仁篇)'에 대한 내용도 삽입되어 있는데 바로 '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라는 격언이었다. 자신의 세상인 음(陰)을 덕(德)으로 승화시키고 SS를 아량껏 살피려는 보산의 거만한 사고가 들어간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산은 SS의 집 앞에 새끼줄에 숯과 붉은 고추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는 SS의 아이가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 지팡이 역사(轢死)
월간 매신(月刊 每申) 1934년 8월에 실린 작품이다.
지팡이 '역사(歷史)' 가 아니라 '역사(轢死)' 다. '지팡이가 차에 치어 죽음'을 의미한다. 정말 괴이한 제목이다. 이상의 황해도 배천 온천장의 개인 경험담을 담았다. 내용은 즉 슨 온천을 즐기고 돌아가던 길의 화차(火車)에서 그와 그의 친구 S는 화차에 뚫린 한 타구(唾口)( '침뱉는 구멍' )를 발견한다. 과연 그게 침뱉는 구멍인지는 의문이지만 그들은 그 구멍을 침뱉는 구멍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담뱃불을 빌리다 타구에 지팡이를 밀어넣고, 그 지팡이가 온데간데 없어지면서, 헤프닝이 끝난다. 여기서 노인은 지팡이를 찾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이상은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리고 후에 담뱃재를 타구에 떨어뜨리는 노인을 보고 섬뜩해하기까지 한다.
담배를 다 먹은 다음 담뱃대를 그 지팡이 잡아먹은 구멍에다 대이고 딱딱 떠는 바람에 나는 그만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이상 소설 전집 P58)
중(中) 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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