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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료의 고전들

지독한 책 '선악을 넘어서(Jenseits von Gut und Böse)' -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by 한이료 2021. 5. 26.

지독한 책 '선악을 넘어서(Jenseits von Gut und Böse)' -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선악을 넘어서 -니체(1886 作)
  • 가장 '지독하게' 읽은 철학서

니체를 처음 접한 건 2016년도 대학을 입학할 무렵이었다. 당시 동네 서점에서 필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특이한 제목과 내용의 책이 베스트셀러 란(欄)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니체의 말'에 의해 니체 붐이 일었고, 그 여파가 한국에 까지 미친 것이리라. 어찌 되었든, 필자는 그 신비로운 문장들에 매료되었다. 알쏭달쏭하고 와닿을 것 같으면서도 쉽게 와닿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그 작품은 차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산을 내려오고 다시 돌아가는 그 반복에 대해서 말했다. 즉 영원회귀와 위버멘쉬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원회귀 =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되풀이 된다는 사상
※위버멘쉬 =영원회귀의 사유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결단에 의해 환하게 웃는 자로 변화된 사람

니체하면 떠오르는 게 뭔가?

영원회귀와 위버멘쉬(Ubermensch) 그리고 기존 가톨릭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산산히 박살내 버린 것? 필자는 이 철학서와 함께했던 지독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비단, 니체 철학의 통렬함을 느끼곤 한다. 이 철학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후에 나온 후기 니체 철학의 결정체다. 필자는 니체를 접하고 기존의 상식들이 산산히 부서지는 경험을 했는데, 가히 망치의 철학가 답다. 그의 문장들은 (잠언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너무나도 추상적임과 동시에 기존 상식에 대한 의구심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에, '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해보자 ' 라는 20대의 유치한 집념 하나로 독파해 낸 철학서이다. 심지어 징그럽게 메모해가며 읽었다. 위의 판본은 '선악을 넘어서(혹은 선악의 저편)' '우상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를 한테 엮었는데, 본고에서는 '선악을 넘어서' 만 먼저 다룰 예정이다.

징그러운 메모들

  • 니체가 생각하는 '선악의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것.( '선악을 넘어서'의 구성 )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에서 모든 관념과 이성 그리고 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겨우 인간적이었던 것 뿐임을 역설하며 '신의 죽음'을 선고했다. 그리고 이 '선악의 저편'에서 그는, 근대사회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망치의 철학가답게 당 시대의 관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선악이 육(肉)에 속한 인간적인 개념임을 말하는 데, 이는 가혹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차치하자면, 글의 구성은 전체 9개의 장과 서문 그리고 296개나 되는 잠언과 격언 그리고 글로 이뤄져 있다.

니체의 초상


< 머리글 > : 진리에 관한 독단론의 비판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베단타 학파나 플라톤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라며 일축한다.

독단론은 의기소침하고 위축된 꼴을 하고 있는 것이다.
(p15 머리글(독단론 비판)


< 1장 철학자의 편견에 대하여 > : 기존의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들을 부순다. 칸트에 대해서는 경직되고 점잖은 위선으로 우리를 논리의 샛길로 유인하고 드디어 그의 '정언명령'으로 인도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스토아학파에 관해서는 지독한 기만이자 무관심에 대한 추구라며 비난한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오류인 '의지가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여기는 기존의 버릇을 꼬집는다. 그와 더불어 과학주의와 심리학에 대해서 '도덕관념을 부수고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 2장 자유로운 정신 > : 언어, 무지, 허무 속에 세워진 모든 학문과 그 모순을 지적하며, 자유로운 정신을 잃지말 것을 당부한다. 그와 더불어 절대적 진리를 지키기 위한 고독에 대해 비판하며 냉소주의를 옹호한다. 철학의 언어학적 오류인 '기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구'를 밝히며, 이에 선악이 도치되고 있음을 말한다.

"뭐라고? 아니 그러면 쉽게 말해서 신은 부정되었지만 악마는 부정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천만에! 그 반대라네. 친구여! 자네에게 그런 속된 말을 하도록 시키는 자는 악마란 말인가!
(p50 선악의 전도가 드러나는 부분)


< 3장 종교적 본질 > : 종교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비난하고 나선다. 종교의 변질과 역사 긜고 계몽으로의 유도를 언급하기도 하고, '종교적 신경증'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문헌학적 오류를 꼬집는다. 나아가서 세계관을 유럽으로 존속시킨 신약성서에 대한 경멸도 마다치 않는다. 종교의 역할이 괴로운 현실의 질서에 만족하는 기분을 단단히 잡아두는 기술이라며 빈정댄다.

< 4장 잠언과 간주곡 > : 간단한 잠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치판단의 오류를 꼬집는다. 또한 그는 지나친 자유정신에 대해서도 경게하는데 그것을 부자유라 일컫는다.

자유정신, 즉 경건한 인식자에게는 '경건한 기만'보다 '불경건한 기만'이 더 좋고, 그의 '경건'에 더 가깝다.
이것이 그의 부자유이다.
(p77 지나친 자유정신에 대한 경계)


< 5장 도덕의 자연사 > : 이제까지의 도덕 탐구에서 도덕 자체가 배제되고 그 형식이 중시되는 오류가 많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니체는 그리스도교적, 아리스토텔레스적 전제에 이미 결론이 이뤄진 채, 추구되는 도덕탐구를 비판한다. 즉 이제까지의 도덕이 형식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이에 행복, 공포 많은 감정들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덕관념이 현대의 복종에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 6장 우리 학자들 > : 발자크(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실주의 선구자)의 말로 시작한다. 현대 철학자들의 어려움이 전문화와 편견임을 말한다. 또 "요즘에는 정신의 자기부정과 비개성화만이 목적이라고 인정 받고 나아가 찬미된다" 며 빈정댄다. 회의주의에 대해서도 비난하는데 현 유럽의 지배적인 의욕저하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말한다.

< 7장 우리의 미덕 > : 풍부한 역사적 편견들로부터의 미덕을 말하며, 앞으로의 심리학이 브루주아적 '선'의 해부라고 일축한다. 유신적 도덕 찬양자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그가 숭고하고도 '옹졸한' 정신성을 가졌다고 일컫는다. 도덕주의자의 박애가 모순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악(惡)'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성실히 탐구하라 말하기까지 한다. 칸트에서 벤담으로 이어지는 공리주의 계보의 비판 철학을 도덕으로만 어긋나지 않게 합리화 했다며 비난한다. 또한, 기만적인 정신의 근본의지에 '반항하라'며 충동을 앞세우라 한다. (여성계몽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여기는 별로 찬동하고 싶지만은 않다. 니체는 여자들에게 타고난 천성이 있다고 믿었다.)

만세로다 그대들 착실한 수레꾼이여
언제나 '느리면 느릴수록 좋다'로구나
머리와 무릎은 굳어버려
감격도 모르고 농담도 모르고
그 평범함에는 손도 댈 수 없구나.
천품도 없고 재주도 없구나
(p136 공리주의 비판)


< 8장 민족과 조국 > : 독일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비난하는데 그것이 '과거의 역사성에 묶인 채 오만함을 풍긴다'고 말한다. 제약된 인종성립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민주주의 즉 노예 인간의 양성을 비난한다. 진정으로 '독일적인 것'에 대한 고찰이 이뤄진다. 독일의 문체를 '제 3의 귀를 가진 자에게는 독일어로 쓰인 책들이란 얼마나 고문이겠는가!'라며 비판한다.(그런 그가 독일적인 문체로 말하는 모순은 뭘까.) 영국의 철학적 격하를 다루며 영국이 근대사상에 '평범함에 안주'라는 악영향을 미쳤음을 말한다. 또한 오랜 관계를 맺었던 바그너에 대한 언급이 이뤄진다.

< 9장 고귀란 무엇인가 > : 야만인으로써 귀족이 이룩한 것에 대해 비판하지만, 귀족이 그 직권을 포기할 때 부패가 발생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예 도덕의 특징이 '허영심'임을 역설한다. 이기주의는 고귀하다고까지 말한다. 고뇌는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와 동시에 사색하는 인간에게 냉소를 퍼붓는다.

심각하게 고뇌하는 인간은 - 얼마나 깊이 괴로워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순위가 결정된다.- 정신의 긍지와 구토를 느낀다.
(p184 고뇌의 고귀성)


높은산에서 후곡(後曲) 삽입 ( 자신의 사상에 대한 비탄 = '차라투스트라와 영원회귀 시작의 도래' 에 대해서 노래한다.)


  • 총 평론

모든 관념을 부순 니체에게 어떤 평을 내려야 하는가. 나는 알 수 없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니체는 회의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모든 것을 부수었지만, 그것을 무(無)로 돌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의 무거움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사람들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지만 다른 니체의 저서들을 잘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본격적으로 모든 걸 떄려부수기 시작한 건 이 '선악을 넘어서'인데 말이다. 그의 저서가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그의 사상은 너무나도 강렬하다. 통한이 느껴질 만큼이나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니체의 사상에 흥미를 가진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