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Nesnesitelná lehkost bytí)' -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 원제에 대해서
밀란 쿤데라(1929~)는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인이다. 그의 소설은 그 탓에 프랑스어로 옮겨진 바 있다. 실제로 저자는 1975년부터 프랑스에 거주를 시작했으며, 1984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egerete de l'etre)'라는 불어로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민음사의 원제 표기에는 불어를 병기하고 있으며, 역자 또한 숭실대학교의 불문학과 교수님이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중역(重譯)인 셈이다. 체코어에서 불어로 불어에서 한국어로 2차례의 번역이 이뤄졌기 때문에, 필자는 원제란에 그의 정체성을 살려서 체코어로 표기했다. (체코 슬로바키아 공산당에서 반공 혐의로 추방된 밀란 쿤데라 본인이 반길만한 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가 처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데, 견딜 수 없는 것이 존재인지, 아니면 존재의 가벼움인지에 대해서인지 잘 몰랐다. ( 하긴, 참을 수 없는 것이 존재였다면 쉼표(,) 가 중간에 들어갔을 것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존재의 가벼움이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존재는 가볍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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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가벼움
니체의 철학중에는 '영원회귀'라는 사상이 있다. 굉장히 복합적이지만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삶은 똑같은 수순대로 영원히 반복되고 반복된다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와 무엇이 다르냐면, 우리가 죽으면 전에 했던 똑같은 삶을 똑같이 반복하게 된다는 굉장히 파격적인 내세관이다. 가히 망치의 철학가답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는 게 니체의 주장이었지만, 밀란 쿤데라는 이 영원회귀에 내심 불만을 품는다. 이 불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 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1부 가벼움과 무거움 P 9)
밀란 쿤데라는 영원회귀를 믿는 순간 세상사가 덧없게 되어버림과 동시에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삶이란 하나뿐이고 진중하고 나아가서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셈이다. 매 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처럼 영원성에 못박히게 된다고 그는 표현한다.
니체의 사상이 강렬한 건 알고 있다. 그의 망치에 많은 통념이 부서졌다. 그렇다고 그가 회의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영원회귀는 반복되기 때문에 현세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는 그렇게 믿어야 했다.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을 읽어 본 이들은 아마 알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영원회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도리어 무거움을 더한 것이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말에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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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전개방식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첫머리를 거쳤을 무렵 이 책이 소설의 형질을 띨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지론이 짙에 담긴 어떠한 철학서처럼 전개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1부 2> 를 넘어서는 순간 그는 대놓고 인물을 상정해서, 서사를 진행시킨다.
나는 수년 전부터 토마시를 생각했다.
(1부 가벼움과 무거움 P14)
토마시는 'einmal ist keinmal'(한번은 중요치 않다.)이라는 문장에서 태어났다.
(2부 영혼과 육체 P69)
그리고 인물들과 상호작용 하는 중에 저자의 사고가 끼어들거나 하는 식의 전개를 보이는데 굉장히 독창적이다. 조금 거슬리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식이다.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온 이래 토마시는 테레자와의 만남이 여섯 우연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생각 때문에 불편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저자 독백)
이 부분은 87페이지의 첫 부분이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서사에 참여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 뒷부분에는 우연에 관한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 늘여놓았다.
- 인상깊은 구절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특히 인상깊은 구절들이 많았던 것 같다. 저자와 서사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이뤄진 철학적인 고찰들은 나를 과열시킬 정도로 흥분케 만들었는데 그게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1. 동정심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도 상상력으로 증폭되고 수천 번 메아리치면서 깊어진 타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타인을 대신해 느끼는 고통만큼 무겁지는 않다. (P57)
2.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무엇일 다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P87)
3.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P93)
4. 오로지 가장 유치한 질문만이 진정 심각한 질문이다. 그것은 대답 없는 질문이다. 대답 없는 질문이란 그 너머로 더 이상 길이 없는 하나의 바리케이트다. (P226)
5.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로 도망친다. 그들은 시간의 축 위에 선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는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P271)
- 총 평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저자가 '농담'에 이어 출간한 두 번쨰 작품이다. 그 이후 한국에 들어와 많은 '참을 수 없는 ' 신드롬을 일으켰다.(실제로 수없이 많은 참을 수 없는 것들이 탄생했다.) 책 날개 부분에 보통 꽉꽉 채워져 있는 저자의 설명란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태어났다는 말 한마디 뿐이라서 조금 조사를 필요로 했다. 그는 신비스런 작가이다. 존재의 무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그 소중함을 알려주고 떠났다. 특이한 작풍으로 말이다. 이 소설을 접한 게 3년 전이라서 기억을 되짚는데 오래걸리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작품을 사랑하는 것 같다. 독특한 영원회귀에 대한 해석과 입장, 그리고 여러 구슬같은 문장들을 남긴 그는 아직도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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