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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료의 고전들

불가지론자가 읽는 '천로역정' - 존 버니언(John Bunyan)

by 한이료 2021. 6. 11.

불가지론자가 읽는 '천로역정' - 존 버니언(John Bunyan)

천로역정 (편역본) - 포이에마 출판사

  • 불가지론(不可知論) 이란?

필자는 자신에 종교적 입지를 설명할 때, 이 '불가지론' 이라는 그늘에 숨는 버릇이 있다. 불가지론은 사후의 '신적' '초월적'인 것들은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인 입장이다.  때문에 필자는 조물주와 사후세계에 대해서 쓴 책들이 완전히 부질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성경을 비롯해 가톨릭 서적들을 탐독하는 것을 좋아하고, 불교의 사상에도 관심이 있다.  때문에 성경 다음으로 기독교적으로 훌륭한 책으로 인정받는 이 '천로역정'을 마냥 비판의 시각으로 보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세상과 내세관을 충분히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이 '천로역정'을 읽는 까닭이다.  비록 그들의 말대로 라면 필자는 최후의 심판 이후로 구원받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 '천로역정'의 작자 '존 버니언(John Bunyan)'  

존 버니언 : (생몰) 1628~1688

'존 버니언' 혹은 '존 번연' 은 은 1928년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땜장이는 구멍뚫린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때우는 일을 하는 이들을 의미하는데, 상류계층은 아닌 셈이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열살이 되자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땜장이 노릇을 했다.  열여섯 살에는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청교도주의 군대에 징집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1653년 존 기퍼드(John GIffard) 목사에게 침례를 받는다. 그 후 많은 설교활동을 전전한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 이외에 종교는 탄압받던 시기라서 그는 죄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데 무려 12년가량에 걸쳐 두 번이나 투옥되기에 이른다. 감옥생활 중에 그는 오로지 성경에만 기초해서 이 '천로역정'을 집필하며, 88년 런던에서 폐렴이 악화되어서 목숨을 잃는다 .

 

그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굽히지 않았던 그는 가히 심지가 굳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천로역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 읽기 쉽게 '편역'된 천로역정 

필자가 처음 천로역정을 접한 것은 더 클래식 북의 아주 작은 사이즈의 책이었다. 17세기에 흔히 쓰였던 상징과 속담들은 자칫 잘못하면 오역되기 쉬워 보였다. (실제로 현대에는 통용되지 않는 속어들이었다.) 그런데 이 C.J 로빅이 영문 편집한 이 천로역정은 더욱 알기 쉽게 와닿았던 것 같다. 어르신들을 위한 큰 글자 본도 출판되어 있다. 그리고 뒷 부분에는 옮긴이의 각주가 붙어있으며, 각 구절이 성경 어느 부분을 인용했는지도 병기되어 있어서 얼마나 버니언이 성경에 충실하게 비유들을 적절이 섞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원문 그대로를 보았더라면 '이게 무슨 의미지?' 싶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제껏 접한 천로역정들 중에서 가장 일목요연했다. 


  • '천로역정'의 줄거리 

1. 천로역정은 버니언의 꿈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사내가 집을 등지고 책(성경)과 큰 짐을 지닌 채 멸망의 도시에서 구원을 갈망하는데 그의 이름은 '크리스천'이다. 성경에 따르면 곧 그 도시는 불바다가 될 예정이었고, 그는 어디로 가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서 고뇌한다. 곧 '전도자'라는 이름의 나이 지긋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에게 '좁은 문'으로 향하는 방향을 짚어준다. 

 

2. 크리스천은 낙담의 늪에 빠지고,  세속현자의 꾐에 빠져 길을 벗어나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전도자가 그에게 다시 방향을 짚어주고 그는 좁은 문(혹은 양의 문)에 도착하게 된다. 양의 문에선 선의가 그에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두루마리와 옷을 입혀준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는데, 이성과 율법에 너무 충실해서는 안된다고 일컫는다. 오로지 복음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3. 양에 문에 도착한 크리스천은 선의가 짚어준 방향대로 해석자의 집에 이르고 거기서 조심해야 할 것들을 각 상징을 통해 언도받는다. 구원의 길에 도착한 그는 그리스도가 못박힌 십자가를 보게 되고, 풀지 못했던 짐을 그제야 벗어 던지게 된다. 거기서 우매, 나태, 방자 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허울과 위선이 담을 넘나드는 것을 본 그는 그들을 질책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

 

4. 곤고재의 쉼터에 도착한 크리스천은 잠을 청하게 되고 두루마리를 그만 잃어버린다. 그리고 올라서야 자신이 두루마리를 잊어버린 것을 깨닫고 다시 찾으러 자책하며 둔덕을 내려간다. 

 

5. 그는 하우스 뷰티풀에서 줄에 묶인 사자 두 마리를 마주하고 겁을 집어먹지만, 그들이 묶여있는 것을 '주의깊은'이 일러주고 무사히 그곳에 머문다. 서재와 무기고 그리고 옥상에서 많은 물건들과 마을 그리고 상징을 구경한다.  

 

6. 겸손의 골짜기를 오르던 그는 아볼루온 이란 괴물과 싸움을 벌이고, 주님의 덕택에 승리하게 된다. 온갖 기도들로 무장한 그는 마귀들을 물리치고 나아간다. 

 

7. 신실을 만나 길벗으로 삼는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허풍선을 만나고 그가 말뿐임을 지적하고 물리친다. 허망시장에 다다르자 전도자는 그들에게 위협이 닥칠 것임을 예고한다. 

 

8. 허망시장에서 그들은 괴짜 취급받고, 죄인 취급을 받는다. 결국 신실을 처형하기에까지 이르지만 몸소 마차가 내려와 그를 하늘로 인도한다. 그곳에서 소망을 만나 다시 길을 간다.

 

9. 그들은 두마음이라는 자를 마주하게 되고, 그를 물리치지만, 그가 다시 세상집착, 돈사랑, 노랭이를 대동하고 나서 그들에게 다가서지만 크리스천과 소망은 그들을 똑같이 물리친다. 데마가 은광으로 인도하려 하지만 크리스천은 소망을 말리고 가던 길을 간다.  

 

10. 곁길 초원에 이른 소망과 크리스천은 무심코 다른 길로 새게 되고 결국 절망거인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각종 고문에도 자살하지 않고 결국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자살이 살인죄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11. 기쁨 산맥에서 그들은 목자들을 만나고 여러 상징들을 언도받는다. 길을 걷는 중 또 다른 순례자인 무지를 만나지만 그와 동행하지는 않는다. 반대편에서 무신론자가 거꾸로 길을 걷는 것을 보고 그를 질타한다.

 

12. 무지에게 크리스천은 가르침을 주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믿음의 깊이에 따라 더욱 깊어지는 강물을 마주하고 그들은 역경을 거쳐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무지는 지옥으로 인도받게 되고, 버니언이 꿈에서 깨어난다. 


  • '천로역정'의 후속편 2부에 관해서

 개인적으로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은 크리스천의 아내와 자식들이 순례길에 나서는 2부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마치 밀턴의 실낙원은 읽어도 복낙원은 읽지 않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알기 쉽게 정리된 책은 보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천로역정 완역판을 읽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천로역정 완역판 


  • 총 평론 

불가지론자에게 종교라는 기댈 구석을 찾는 과정은 매혹적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신들이 존재해서 어느 신을 믿어야 하는지 가늠이 가질 않았던 탓에 어중간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천로역정에서 미루어 본 버니언은 조금 꽉 막힌 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만큼 절실하게 믿고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리라. 필자도 언젠간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버니언은 이 이야기를 '옳게' 해석하기를 바랐다. 맺는 글에서도 그는 '주의하라'고 독자들을 이른다. 그의 신념이 얼마나 심지가 굳은 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