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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료의 작가들

자기관리의 결정체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

by 한이료 2021. 5. 27.

자기관리의 결정체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

  • 한국에서 '두 번째'로 사랑받는  일본작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일본작가는 누구일까? 현재로써는 단연코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다. 특히 그의 많고 많은 작품 중 하나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은 한국에서 최(最)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심지어 지금도 올라있다.) 하지만 한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부동의 1위 였던 적이 있었다. 1987년 '노르웨이의 숲(혹은, 상실의 시대)' 가 발간 되면서 하루키 붐이 일었던 바가 있다. 출판 3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서도 '노르웨이의 숲'은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많이 읽히고 있는 소설 중 하나다. 


  •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의 숲 (ノルウェイの森)' 이라는 원제 대신에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책이 발간된 바 있다. (왜 원제를 살리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문학 사상사에서는 상실의 시대 초판 디자인을 고수함과 동시에, 민음사에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를 살린 판본이 출간되자 '노르웨이의 숲'과 '상실의 시대'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같은 작품이다.  

 

'상실의 시대'는 첫머리에 비틀즈의 노래인 '노르웨이의 숲'의 가사를 첨부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주인공이 등장하는 부분인 비행기 안 우수에 잠기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만큼, 이 노래에 대한 이해도는 중요하다. 

 

반면 민음사 출판의 '노르웨이의 숲'이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원제와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데 충실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일본어 판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비록 페이퍼백이지만) 언어만 바꾸어서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가 한국식으로 '감성'을 살렸다면, '노르웨이의 숲'은 원본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첫머리만 봐도 그렇다. 상실의 시대는 '비틀즈의 음악'으로 문을 여는 한편, 민음사는 원래 되어 있던대로 '수많은 축제를 위하여' 라고 쓰여져 있지 않은가!)

 

※ 개인적으로 민음사의 표지 그림이 '이우환 작가의 '선으로부터(1974)' 라는 점이 필자에게는 큰 의미로 와닿았다. 소설의 생성과 소멸의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실의 시대( 문학 사상사 출판 )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출판 ) 


  • "군살이 붙으면 작가의 생명은 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철저한 자기관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실제 모 인터뷰에서 오전 중에는 작품을 쓰는 데 할애하고, 오후에는 운동이나 독서를 즐긴다고 말한 바 있다. 72세의 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단조롭고도 균형잡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새벽과 오전중에 원고지 분량, 대략  '30페이지' (필자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의 글을 매일같이 쓰고, 오후에는 수영, 혹은 조깅 등을 하는데, 가히 그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 '기사단장 죽이기' 에서 언급된 '난징 대학살'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団長殺し)'는 2017년 한국에 번역된 바가 있다. 이 책은 <1. 현현하는 이데아 >와 <2. 전이하는 메타포 > 두 권으로 나뉘여 있는데, 문제의 부분은 아주 짧막하게 2권 전이하는 메타포에서 드러난다. 바로 그가 만주국과 난징 대학살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인데, 여기서 일본 우익(右翼) 위정자들에게 '작품을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작자'라고 비판받은 바 있다. (아주 짧게 언급했는데도 이 정도다. 제대로 읽어보기는 한 걸까? 의문이 든다.) 제목만 보고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부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초상화가가 한 치매걸린 일본화 작가의 집에 기거하면서 생기는 기묘한 일들을 담았다. 

 

기사단장 죽이기(2017) -문학동네 

 

문제의 부분은 P87 ~ 88 이다. 그 내용을 첨부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그의 적나라한 묘사에 조금 눈살이 찌푸려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성적인 묘사가 가감없이 들어가 있으니까 말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처음 하루키 문학을 접했을 때는 겨우 중학생이었는데, 그의 묘사에 조금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이런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다니! ) 하지만 그것을 배제하더라도, 그의 문학성은 천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신춘문예 원 패스'를 기록할 만큼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가이다.  그의 작풍은 염세주의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회의적이게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하는데 이 또한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그의 음악에 대한 (특히 재즈와 클래식) 에 대한 박식한 묘사가 드러나는데, 하루키는 재즈 악사들에 대해서 쓴 책이 있는 것 만큼 (포트레이트 인 재즈) 음악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재즈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소설이기에 가능한 현실에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 비현실을 현실으로 접합시킴으로 예술로 승화시키는 장치를 잘 활용한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Q84'(보다시피 제목에서는 조지오웰의 1984를 오마주했다.) 그리고 '태엽감는 새 연대기' 라는 작품이다. 하지만 하루키를 처음 접한다면 비교적 짧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추천한다. 2020년에 민음사에서 아주 미적인 디자인으로 판본을 새로이 만든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대두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민음사 2020년 판본) 


  •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작(作)들 

최근에도 그는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에세이 집인 '일인칭단수' 에서 변함없는 그의 노련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티셔츠 관련된 그의 책('무라카미 T') 을 발견하고는 조금 웃었던 적도 있었다. 방대한 양의 작품은 역시 그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힘든 모양이었다. 하루키의 팬으로서 '일인칭 단수'가 에세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을 떄는 쾌재를 불렀다. 

 

일인칭단수 (문학동네) 
무라카미 T (비체) 


  • 끝으로

일본에서는 정치적 성향이 문학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만, 한국에서는 문학과 정치를 떼어 놓는 경향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하루키가 비난받는 것을 봤을 때는 순간 필자도 욱하는 감정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필자가 처음 접한 일본작가인 만큼 그에 대한 필자의 애정도 남달랐던 것이다. 그에 대한 책을 많이 소개하지 못한 게 개인적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활동을 응원한다. 비록  현대일본 작가 중 한국에서 2위일지는 몰라도 필자의 마음 속에선 부동의 1위이다. 그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50대였던 그가 70대를 넘어서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란 건 참 야속한 요소다.